July 21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사 30:15)

마음을 새롭게 하고 싶을 때는 내 안에서 쉬어라. 쉼이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게으름이 아니란다. 나와 함께 쉬는 일은 나를 신뢰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신뢰는 부요한 단어로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가득 품고 있단다. 마음을 다해 나를 믿고 의지하려무나. 그 모습이 나는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지쳤을 때 나에게서 멀어지는 사람이 많단다. 그런 사람들은 나를 의무나 부지런함과 연관지어 생각하기 때문에 일하다 쉼이 필요할 때는 내 임재에서 벗어나 숨으려고 하지. 이런 모습이 너무 슬프구나!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한 것처럼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함을 얻게 될 거란다.

July 20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 2:15)

내 얼굴을 구하면 네가 갈망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네 마음속 가장 깊은 열망은 바로 나와의 친밀함을 추구하는 것이란다. 나를 갈망하도록 내가 너를 지었기 때문이지. 잠잠히 묵상하는 일에 죄의식을 갖지 마라. 너는 네 안에 있는 신성이 이끄는 바에 순응했을 뿐이다. 내 형상을 따라 너를 지었으며, 네 마음속에 하늘을 숨겨 두었다. 나를 향한 너의 갈망은 천국의 본향에 대한 열망과 같구나.

전심으로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욕구를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너는 나와 누리는 친밀함으로 인해 이 어두운 세상에 밝게 빛나게 되어 이로써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게 된다.

July 19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일 1:5)

네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내게로 가져와라. 두려움과 염려는 여전히 너를 괴롭히지. 두려움은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니지만, 죄를 범하게 하는 유혹이 된단다. 두려움의 미사일은 밤낮 할 것 없이 맹렬히 너에게 날아들 거다. 참으로 혹독한 공격이지만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그 불화살을 막아내라. 감정에 따라 나를 향한 신뢰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신뢰하기로 끈질기게 선택하면 결국 감정은 믿음을 따르게 된다.

두려워서 숨지도 말고, 두렵지 않은 척 가장하지도 마라. 마음속 후미진 곳에 불안을 감추면 두려워하는 감정을 두려워하는 기괴함이 생겨난단다. 불안한 마음을 내게로 가져오면 우리는 함께 그 불안함을 다룰 수 있지. 나를 신뢰하는 일에 집중하면 두려움은 네안에서 점차 그 설 자리를 잃게 될 거란다.

July 18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어서 모든 순간에 풍성히 드러난다.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는 끈은 사랑의 유대로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다. 하지만 나와의 연합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너는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단다.

너의 눈을 열어 모든 곳에 있는 나를 찾아라. 내 임재를 인식하면 할수록 너는 더욱 안전해진다. 이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며, 궁극적인 현실에 닿도록 조율하는 일이다. 나는 네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세상보다 훨씬 더 실재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란다.

July 17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 2:13)

나와 함께 잠시 동안 떠나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상일은 잠깐 보류해도 좋다.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영접하는 일을 보류하면서 언젠가는 교회에 나갈 거라고들 말하지. 그러나 나를 삶의 배경화면으로 밀쳐 두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를 찾기가 더 어려워진단다.

사람들은 분주함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이 독재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통제하도록 만들지. 내가 구원자 됨을 아는 사람들도 세상 속도에 발맞춰 행진하곤 한다. 그들은 많을수록 더 좋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모임도, 프로그램도, 그리고 활동도 더 많을수록 좋다고 믿는다.

너를 부른 까닭은 나를 따라 고독한 길을 걸으며, 나하고만 보내는 시간을 최우선이자 가장 큰 기쁨으로 삼게 하기 위해서다. 부디 이 편을 선택했으면 좋겠구나. 내 곁에 가까이 걸을 때 나는 너를 통해 다른 사람을 축복한단다.

July 16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시 40:2)

자기 연민은 바닥이 없고 미끄러운 수렁과 같다. 일단 빠지면 수렁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든다. 미끄러운 수렁 아래로 빠지면 바로 낙심의 길에 들어서며 그 어둠은 깊다.

유일한 희망은 고개를 들어 네 위에 내리비치는 내 임재의 빛을 바라보는 일이다. 네 관점에서 보면 웅덩이 깊은 곳에서는 빛이 희미하게 보이겠지만, 이 희망의 빛은 네가 아무리 깊은 곳에 있더라도 그곳까지 도달한단다. 나를 신뢰하며 바라는 동안 너는 그 절망의 웅덩이에서 천천히 일어서서 마침내 위로 올라와 내 손을 붙잡을 수 있지. 너를 다시금 빛으로 이끌어낼거다. 조심스럽게 너를 닦아 진흙을 떨어내겠다. 내 공의로 덧입히고 인생길을 너와 함께 걸어갈 것이다.

July 15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 6:34)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이건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다. 나는 시간을 낮과 밤으로 나눠서 네가 감당할수 있는 삶의 부분을 살아가도록 했다. 내 은혜가 너에게 족하며, 그 족함은 오직 하루를 살기에 충분하다. 미래를 걱정하면 하루의 문제 위에 또 다른 하루의 문제를 연약한 네 몸 위에 쌓는 격이다. 그러고는 무거워 비틀거리는데, 나는 결코 너에게 이 짐을 지울 생각이 없단다.

나를 신뢰함으로 너를 짓누르는 이 짐을 발 빠르게 밀쳐내 버려라. 걱정은 머릿속을 종횡무진 떠돌지만, 나를 신뢰하면 곧장 너를 내 임재로 이끈단다. 그렇게 너의 믿음을 확신할 때 염려의 수갑은 즉시 풀려 벗겨진다. 나를 항상 신뢰함으로 내 임재를 늘 누려라.

July 14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 37:23~24)

내가 너를 위해 선택한 길을 나와 함께 계속해서 걸어가렴. 내 곁에서 살고자 하는 너의 갈망으로 내 마음이 참 기쁘구나. 네가 소원하는 영적 부흥을 즉시 줄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단다. 우리는 함께 높은 산위로 향하는 길을 만들 거다.

우리가 가는 여정은 때때로 험난하고, 너는 연약하다. 언젠가는 높은 봉우리 위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춤추겠지만, 너의 발걸음은 종종 지쳐서 터벅대고 무거울 거다. 다음 걸음을 내디디며, 내 손을 붙들고 힘과 방향을 간구하라고 내가 그리하는 것이란다. 비록 이 순간 길이 험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무료하지만, 저 굽이를 돌면 깜짝 놀랄 일이 있단다. 너를 위해 선택한 이 길을 계속해서 가라. 진정 생명의 길이란다.

July 13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시 34:5)

네가 구원의 풍성함을 경험함으로 끊임없이 완전하게 사랑받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구나. 너는 항상 네 모습, 행동 또는  감정에 근거해 스스로를 판단하지.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마음에 들면 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조금 더 있다고 여긴다. 일이 잘 되어 가고 결과가 좋을 때는 네가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사실을 더 쉽게 믿지. 또 낙심한 순간에는 내면을 살펴 뭔가 잘못된 일을 고치려고 하지.

하지만 그럴 때는 스스로를 고치려 하지 말고 영혼을 사랑하는 나를 바라보렴. 자신을 비판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나를 찬양해라. 내가 보는 너는 내 공의로 덥혀 완전한 사랑으로 빛난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July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나에게서 멀어졌다고 느낄 때는 언제든 나를 사랑하는 신뢰를 담아 내 이름을 속삭이려무나. 이 단순한 기도에는 내 임재를 인식하도록 회복하는 능력이 있단다.

세상에서 내 이름은 끊임없이 오용되어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저주하는 말로 사용하지. 이와 같은 언어 폭력은 하늘에까지 닿아 하나하나 내 귀에 들리고 기록된다. 네가 신뢰하며 내 이름을 부를 때, 저주하는 말에 시달린 귀가 달래지는 구나. 세상이 이를 갈고 내 이름을 뱉어 내며 신성을 모독한다 해도, 나를 신뢰하는 자녀가 속삭이는 ‘예수님’ 이라고는 고백을 이길 수 없단다. 우리 모두에게 복 주는 내 이름의 능력은 네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 그 이상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