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방법과 우리의 방법

최근 종종 듣는 찬양이 There is power in the name of Jesus 라는 곡이다.
이 곡의 가사에 그리고 유튜브에 편집된 영상들에 나와있는 메시지에는 break every chain 이라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메시지 부분에 power 를 연상하는 번개, 불 등 사람이 이길수 없는 그러한 힘들이 연출 되곤 한다.

예전에 들을때 난 이곡을 들이면서 그 위엄있는 그 힘이 마치 나와 우리의 어려운 인생을 바꿔 놓을것만 같은 생각을 한적도 있다. 어쩌면 이곡을 쓴 사람도, 그리고 영상을 만든 사람도 그 power 로 생각 하며 만든건 아닐지…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 갑작스럽게 들어온 생각은 이와 달랐다. 그리스도의 power 는 나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그러한 power 가 아니다. 제목인 그 이름에 능력이 있음은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power 를 파괴적인 그러한 능력으로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 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방법은 언제나 파괴적이지 않았다. 항상 사랑으로 용서 하셨고, 어떠한 모습과도 협력 하심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노래의 power 는 사랑으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교회? 단체를 통해 코로나 확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것이 사실 일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모든 사실을 안다는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나의 그리고 우리의 행동이 바뀌진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여론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온 삶의 모습 때문은 아닐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사탄과 맞서야 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위협하고 강압하고 강제하는 그러한 삶을 살았기 때문은 아닐지… 그리스도의 방법이 아니라, 우리가 편한 죄악의 방법으로 그렇게 살아 온건 아닌지 다시 되돌아 봐야 할 시점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2천년전 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그렇게 십자가를 맞이 하셨다. 그리고 그 power 로 이 지구에는 복음 이라는 그의 말씀이 전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2천년이 넘는 시간이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습, 그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가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우리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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