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Jesus Calling

Jesus Calling (지저스 콜링)

April 4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2)

네 영혼의 잠잠한 곳에서 너를 만난다. 그곳이 너와 교통하고자 하는 곳이지. 내 임재에 마음을 연사람은 내게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단다. 내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해 나를 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지. 나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너와 내가 함께 찾는 결과물은 충만한 기쁨이다.

이 세대에서는 영혼의 잠잠함을 찾아보기가 너무 힘들구나. 속도와 소음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지. 너는 조용한 곳을 찾아 나와 교제를 나누렴. 이와 같은 너의 행동이 나를 복되게 하며, 그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내가 네 모든 노력까지도 보고 있단다.

April 3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8)

내 안에서 너는 모든 것을 소유했다. 내 안에서 너는 완전하다. 내가 네 마음에 있는 쓰레기와 잡동사니를 제거하면서 나를 경험하는 역량이 커진단다. 나를 향한 열망은 강해지고, 다른 욕망은 점차 사그라진다. 너는 무한히 그리고 풍성하게 내게 올 수 있으니, 다른 무엇보다 나를 더욱 열망함이 삶을 살아내는 최선의 방법이지.

내가 채울 수 없는 필요는 없다. 내가 너를 창조했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었으니 말이다. 간혹 세상이 달리 보일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명령에 따른단다. 겉모습에 속지 마라.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April 2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7)

나의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의 모든 쓸 것을 채우리라 약속했다.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내가 주는 평안을 갈망한단다. 그런데 그 평안이 깃든 마음의 정원에는 교만과 근심, 이기심, 불신과 같은 잡초가 불쑥불쑥 자라지. 나는 농부다. 네 마음에서 이 잡초를 뽑는 게 바로 나란다. 네가 나와 함께 잠잠히 앉으면 네 마음 가득 내 임재의 빛이 임하지. 그러면 이 하늘의 빛 속에서 평안은 풍성히 자라고 잡초는 시들어 버린단다.

고난 중에 나를 신뢰하면 평안이 번성하고 잡초는 말라 죽는다. 골치 아픈 상황에서도 내게 감사해라. 시험을 통해 네가 얻을 평안이 그 고통을 휠씬 능가하기 때문이다.

April 1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나와 날마다 교제하며 살자꾸나. 환경을 초월해 사는 법을 배우렴. 나와 편안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 단순한 삶을 구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얘야, 어수선하지 않은 세계를 꿈꾸는 환상을 버리라고 너에게 도전한다. 하루하루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가운데 거하는 나를 찾아라.

하루 일을 아주 세세한 것까지 나와 이야기 나누며, 우리 관계의 궁극적인 목적은 끊임없이 친밀함을 형성하는 것임을 명심하렴. 성공적인 하루란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성취해 냈느냐에 달린 게 아니라, 그날의 일과 중에 네가 나와 얼마나 소통했느냐에 달려 있다. 해야 할 일 목록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 나의 영에게 매 순간 인도해 달라고 구하렴. 그가 너를 내 곁에 가까이 둘 거란다.

March 31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8)

나의 선함을 맛보아라. 나를 친밀하게 경험하면 내 선함을 더욱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너를 살피는 살아있는 하나님으로 너의 삶에 참여하기를 원한단다. 매순간 나를 발견하고 내 사랑이 임재하는 통로가 되도록 너를 훈련시킨다.

내 임재라는 선물, 그 깊이와 넓이를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이 선물에 감사해라.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장 먼저 말한 내용은 평화였다. 그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혀 마음을 정돈해야 하는 가장 깊은 필요를 알았기 때문이지. 너에게도 평화를 말하는 까닭은 너의 염려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하루 내내 그리고 매일 평화 가운데 거하도록 너를 지었단다. 내게 가까이 와서 나의 평안을 받아라.

March 30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신 33:27)

내가 너를 보살핀다 약속하지 않았느냐.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신뢰해라. 몸이 지치고 일이란 일은 모두 잘못된 듯 보일 때조차 여전히 고백해라. “예수님, 당신을 신뢰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면 그 문제는 내 통치권 아래 놓이고, 너는 나의 영원한 팔이 주는 안전함을 다시 누리게 된다.

네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나는 너의 하루에 일어날 일을 배열해 두었단다. 하루하루는 나의 방식을 배우고, 나와 더욱 친밀해질 기회를 제공하지. 정말로 볼 수 있는 눈으로 하루를 보면 내 임재를 알려 주는 표시는 가장 어두운 날조차도 밝힌단다. 나를 찾아라. 숨겨진 보물을  찾듯이 나를 발견하게 될 거다.

March 29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 3:1)

때가 이르기 전에 일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마라. 한번에 하루씩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혹 어떤일이 생기거든 꼭 오늘 해야하는 일인지 내게 물어보렴. 오늘 감당할 일이 아니라면, 내가살피도록 내려놓고 너는 오늘 해야 할 일을 시작하렴. 이 방법을 따르면 삶에 놀라운 단순함이 생겨 일의 기한을 누리게 되고, 천하 만사를 때에 맞춰 하게 되지.

나와 친밀하게 사는 삶은 복잡하거나 어수선하지 않다. 네 초점을 나의 임재에 놓을 때는 한때 너를 힘들게 했던 문제가 그 힘을 잃게 된다. 주변 세상이 엉망 진창이 되고 혼란스러울 때는 내가 세상을 이겼음을 기억해라. 이것을 너에게 이르는 것은 너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란다.

March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막 10:15)

나는 주는 하나님이라서 아낌 없이 준단다.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나는 모든 것을 주었다. 주는 것은 내 본성이라서 나는 받을 사람들을 최대한 찾는단다

나와 친밀감을 키우고자 할 때 가장 필요한 특징 두가지는 ‘수용성’과 ‘주의력’ 이다. 수용성은 네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 풍성한 내 부요함으로 채워지도록 한다. 주의력은 네 시선을 내게로 행하도록 해 모든 순간에 나를 찾도록 하지. 선지자 이사야는, 네 마음의 심지를 견고히 내게 두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런 주의력으로 너는 영광스러운 선물, 곧 나의 완전한 평안을 받는다.

March 27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4)

내 임재 안에서 잠잠해라. 무수히 많은 일로 혼란한 때에도그렇게 해라.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내 임재 속에서 네가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네안에서 가장 좋은 일을 행한단다. 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너를 새롭게 하는 일이지.

내가 너에게 주는 것들이 주된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내가 주는 것이지만, 너에게 건네는 그 어떤 선물보다 내가 위대하기 때문이다. 내 자녀를 축복하는 일은 나도 더없이 기쁘지만, 내가 주는 복을 우상으로 삼을 때는 더없이 슬프단다. 너의 첫 사랑인 나에게서 네 마음을 빼앗아 가는 모든 복이 우상이다. 나를 네 마음의 궁극적인 갈망으로 삼으라. 모든 선물 가운데 최고인 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라.

March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애 3:26)

나를 기다림은 내가 행할 일을 희망을 품고 기대하며 나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나를 기다리는 태도는 네 삶을, 하루의 삶 그리고 매일의 삶을 살도록 내가 계획한 방식이다. 내가 너를 창조할 때, 일상의 업무를 볼 때 지속적으로 나를 인식하게 했단다.

나를 기다리는 자에게 많은 복을 약속했다. 새 힘, 환경을 초월해 사는 삶, 다시 찾은 희망, 계속적인 내 임재의 인식 등이 바로 그 복이다. 나를 기다리면 네가 나를 깊이 의지하는 삶을 살아 나를 영화롭게 하도록 하고, 나의 뜻을 행하도록 준비시킨다. 또한 나를 기뻐하도록 돕는다. 내 안에 완전한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